12월 27일 한예종 이리카페에서
‧ 토 비
···로부터 ···에게
토비는 2020년 ༜이 마음 속 깊이 염원했던 밴드이자 데모의 타이틀이었다. 그 이름은 단순히 그의 별명과 대학교 학번의 앞글자를 따온 것이었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워크샵의 제목이 되었다.
༜ : 시작하기 전에 정리해보자면, 대략 발제 - 작업 진행 - 그것의 기록으로 이어질 것 같은데, 토비의 활동이 단순히 2개월의 기간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질 여지가 있을까?
༏ : 음 .. 아무래도 모임/워크샵과 같은 형식은 진행되는 과정에서 기존의 계획과 다르게 변경되는 등 어느정도 유연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기간은 명확히 정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야지 그 기간동안 확실히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그렇지만 토비가 끝나고서 이 것과 비슷한 형식으로 다른 모임을 진행하거나 혹은 스스로 이 방식을
체화하거나 하는건 이제 각자의 몫이겠지.
༜ : 그러게 같이 진행하는 모임이더라도 서로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이 다를 수 있는 거고. 나는 기록된 것들이 어떻게 보여지고 만들어질 것인지에 대한 아카이빙 문법을 중심으로
두고 있다면, 너는 아카이빙이 이루어지는 대화와 상황 그 자체에 중심을 두고 있을 수도 있는것이고 . .
༏ : 응. 너가 중심으로 두고 있는 아카이빙 문법과 관련해서는 나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야. 그래서 나는 앞으로 우리가 남길 기록들을 서로 교대로 남기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 너와 내가 같이 모여서 정리할 때도 있고, 너 혼자 정리할 때도 있고, 나 혼자 정리할 때고 있고. 이렇게. 그럼 그 과정에서 기록을 하는 사람의 생각이나 기록 방식 같은
걸 엿볼 수 있을 것 같애. 예를 들어 너는 우리가 나눈 대화의 소리 기록을 문자로 옮기는, 녹취 풀기 방식을 중점적으로 할 수도 있고, 나는 우리의 녹취 전체를 풀기보다는 간단한
메모와 사진, 드로잉 같은 것을 넣는걸 중점적으로 할 수도 있고.
༜ : 그런 면에서 우리가 만들어내는 작업 보다는 이 모임/워크샵 자체가 더 작업 같은 것이 될 지도,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긴의 생각 : 조각을 웹 속에서 사진으로 보여주는 방식에 대하여
‧ 삿포로에서 발견한 것 : 이것은 작업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5일간 여행에서 담아온 사진들을 살펴보면서, 삿포로에서의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나누었다.
◌ 검도소년(༜)
- 건축과 부속물 사이의 제작 시기의 차이, 새로운 레이어와 옛 레이어 사이의 먼지와 쓰레기 자라나고 그런 것들이 만연한 것.
༜ : 일본은 노트북 포트 같은 것만 봐도 아직 옛날 포트를 굉장히 많이 써. 아직도 cd, dvd같이 회사들이 옛날 양식들을 그대로 가져간단 말이야. 그런걸 보면 일본 사람들은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고 하더라도 이미 잘 구축되어 있는 것들을 그대로 사용하고 굳이 새 것으로 교체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아. 건축물 같은 것도 보면 그래. 한 번 지을 때 제대로 짓고 건물을 오래 유지하면서
수리해서 쓰려고 하고. 자신의 생활의 속도랑 맞춰서 무언가를 받아들이고 사용하고 하는 것이지.
cf. 한국에 돌아온 후 들은 생각.
미세먼지가 너무 많아서 외부 구조물을 관리할 엄두가 안난다.
하루만 지나도 얼룩으로 물드는 구조들을 굳이 세심하게 마감하려는 의도가 있는가...
멀리서 보면 이미 탁해보이는 건 마찬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흡한 마감처리 틈사이로
들어가는 미세먼지들을 생각하면 보는 마음이 불편하는 것은 사실이다. (검도소년, 2024.01.04)
- 일부러 비효율적인 행동을 하면서 효율적 행동을 경계하기.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실패의 연속을 결과물로 보일 수 있다면 ?
༜ : 내가 집착적으로 행하는 의미없어 보이는 행동을 돌아봤어. 옛날 맥북, 구형 프로그램을 고수하는 행위 같은거. 일본을 처음 가본 경험, 건축, 강박적으로 신경 쓰는 행위들(뭔가를 줍고,
쓸데없이 해보고, 전자 기기를 모으고 ..)을 연결지어서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아.
- 충분히 나온 이야기들은 개인의 배경에서 특수성을 찾기보다 매체를 다루는 개인 본연의 것에서 발견할 수 있다.
༜ : 그래서 그런 삶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거지. 삶의 태도가 드러나는 단서들이 일본에서는 건축에 있었고, 전자 기기에 있었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섣부른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 또 이미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누군가 말하였을 수도 있고.
༏ : 그런 식으로 본인 작업의 특수함을 찾으려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동시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작업에서 말하는 게 얼마나 다를 수 있겠어요. 나는 개인적으로 특수한
경험이나 생각, 그런 건 없고 그런걸 발견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 그것보다는 너라는 사람이 만든 작업의 특수성이라는 건 있겠지. 같은 주제의식을 다루고 있지만 누군가는 평면을,
누군가는 영상을 할 수도 있는거고, 또 같은 평면이라도 만들어지는 방식이나 기법, 재료가 또 다를 수 있을 것이고 ..
2020년에 완결하지 못한 작업 서사, 오픈스튜디오에서의 이야기와 일본을 처음 가본 경험(기술과 인간의 생활 방식 사이의 간극)
이를 바탕으로, 사운드 싱글 timeline 30mins.
특수성을 찾으려다 돌아본 것 : 내가 만들고 싶었던 장르가 이런 거였나?
사운드가 어디에 설 수 있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제작자의 몫은 아니다.
◌ 긴(༏)
- 눈이 오는 지방
༏ : 나는 우리가 여행을 하면서 우연히 발견했던 것들을 돌아보았던 것 같아요.
༜ : 너가 고른 사진들을 보면 눈이 없으면 평범해지는, 일상적인 정경인 것 같애. 얼어붙은 길, 눈 사이로 흔들리는 실루엣같은 것들.
- 꿈과 같은 생경한 경험
༏ : 나는 삿포로에서의 경험과 사진들을 바탕으로 하나의 장면같은 조각, 하나의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
왜냐하면 거기서의 순간들이 되게 꿈같고 망상같았거든. 꿈 같아서 내가 깨어있는게 맞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모든 순간들이 하나의 장면 같았어.
༜ : 눈으로 봤지만 어떤 기록물로 담지 못해서 정말 본 게 맞나 싶을 정도로 느껴지는 것들. 그런 장면들은 너가 고른 사진에서 보이는 테이프랑 나뭇가지가 연결되어서 유지되는,
목재들이 엉성하게 연결되어 있는 그 상태와 굉장히 반대적인 성격과 같다.
༏ : 반대적인 성격.
༜ : 예를 들어 너가 금방이라도 깨어날 것 같은 꿈과 같다고 느낀 장면과 떨어질 것 같은데 계속 연결된 상태로 그 자리에 계속해서 존재하는 나뭇가지와 테이프, 목재들의 사진의 성질은 방향이
서로 반대적이라고 느껴졌거든. 서로 다른 힘의 방향을 너가 쓰려고 하는 소설의 요소에도 적용해 볼 수 있겠다.
༏ : 듣고보니 그러게. 다른 방향의 힘. 되게 신기하다.
검도소년이 말하는 꿈 같은 순간들
༜ : 눈을 감았다 뜨는 상태를 굉장히 길게 늘어서 소설을 쓰는 것도 방법인 것 같아.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에 일어나는 굉장히 미시적인 일들이 있잖아. 그 일들 사이에서 어떤 이야기가 나오는 거야.
꿈 같은 순간이라는 것을 상징이라는 한 다리를 통해 얘기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 : 상징. 어떤 상징을 통해서 ?
༜ : 실제로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에 이렇게 일어나는 일들,
아니면 얼음 위를 걷다가 넘어지려는 찰나(실제로 여럿 경험했던 일이었다)
한 순간에 일어난 일들을 길게 늘어뜨려서 써 보는 것이지.
눈, 꿈 같은 순간, 존재와 믿음에 대하여 - 하나의 단편 소설과 조각적 장면을 통해
나에서 나오기 보다는, 내가 바라보고 생각한 것들. 그것을 허구로 말하는 일. 거기에서 나라는 존재를 지울 수 있다면.
'년초가 되면 항상 어딘가 아프다. 면연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의지가 급격하게 가라앉는 이 기분은 몸이 아픈 것보다 더 신경쓰인다.
해야할 일이 있음에도 진행할 수 없는 무기력함. 당신은 기억하고 있는가?'
지난 일의 되새김 : 워크샵 선언 및 삿포로(외지)에서 보고 느낀 것. 그것들이 작업이 될 수 있는 가능성들.
༜
- 만연한 과거의 데이터 흔적과 실시간 기록 현장
- 클래식과 동시대성의 같은 선상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
- 구형을 추구하는 동시에 새로움을 꿈꾸는 모순된 삶의 태도
- 그 태도가 2020년에 미완결된 작업과 2023년의 오픈스튜디오 사이의 연결되는 지점들...
༏
- 우연히 발견한 것들, 왠지 모르게 눈이 가는 것들.
- 눈, 그리고 꿈 같은 장면.
- 조각과 소설.
- 기록하지 못한 것(순간적으로 마주한 동시에 사라지는 것)과 기록한 것(바스라지지만 사라지지 않는 것) 사이의 반대적 성격...
각자의 공백기가 있다. 어떤 이유로든 그 시간은 작업이 설 곳 없이 방랑하다 머문 기간이다.
그런 처지의 작업들이 폐기되기 직전 한번 더 수면 위로 오른다.
찾을 수 있는 파편적 조각들을 발굴한다.
과거에 사로잡혀야 하는 것은 이성적인 순서이다. 감정은 필요하지 않다.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구아 비바. 지연의 미학. 어떤 페이지를 열어서 읽기 시작해도 같은 느낌이 든다. 마치 불경을 펼치는 기분.
༜ : 2020년은 중단된 미묘한 작업들 투성이다. 그 해는 공백기라고 표현되기도 했지만 무언가를 가장 많이 벌려놓은 해이기도 하다.
시작이 제일 어려워서 시작 비슷한 시도들이 무수히 많았다. 하지만 그것은 기록되지 못하고 하나의 찝찝한 감정으로 남았다.
그것을 지우는 일은 결국 2020년을 공백기로 선언하는 행동임과 동시에 새로운 출발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토비의 어원은 2020년과 깊은 연관이 있다.
언젠가 밴드를 하게 된다면 쓰고 싶었던 이름.
전용 비즈니스 메일도 구글을 통해 만들었었다.
내 생활을 음악과 완전히 분리하고 싶은 마음들.
철저히 나라는 개인을 드러내지 않고 허구성 단체를 보여주려는 욕망.
나는 그해에 가수가 되고 싶다는 이상한 생각을 했었고, 첫 무대를 미술계로 계획했었다.
그럴만한 필연적인 이유를 찾아야만 했고 납득되어야 한다는 강박적 태도들이 보인다.
모순되고 외로운 싸움은 끝내 미천한 막을 내렸고 정리되지 않은 중고 물건들이 가득한 방에서 먼지들이 서서히, 어쩌면 약 3년동안이나, 눈이 내리듯 쌓였다.
그 모순된 감정들을 마침내 정리하고선 큰 문제를 하나 발견했는데, 내가 만든 음악을 전혀 공감할 수 없다는 점이다.
미완결된 작업들은 하나같이 우울했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에너지가 느껴지지않았다. 다른 사람의 작업 같기도 한 그것들이 한편으로는 굳이 깊게 파고들 필요성조차 느껴지지 않았지만 분명 그때여야만
했던 것들이 있었기에 감정을 배제한 발굴을 시작한다.
다시 발굴하고 읽고 포장하는 방법. 이 수단적 태도에는 적어도 데모라는 것을 만드려는 계획 이전에 바뀌어버린 작업적 태도를 선언하는 사운드가 필요하다고 본다.
[2020년]
"선언적 사운드"
2023~,
(demo)
두 사이의 간극을 이어줄 수 있는 작업이 필요하다?
.
.
.
그 이외에도 발굴된 것들은 대부분 이미지, 영상, 소리들이다.
(자료 첨부 필요...)
웹에서 활용 가능성 : 백그라운드 이미지, 버튼 클릭 사운드 등등
༏ : 납득되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2주차밖에 안되었지만, 너를 보면 생각이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것을 정형화하려는 느낌. 너와 나의 과거 작업들을 비교하였을 때,
너는 감성에서 이성, 나는 이성에서 감성 방향을 띄고 있어.
어느 정도는, 작업을 하는데 있어서 루틴이 있어야 하는 것은 맞는데,,,
작업과정이 매우 이성적이지만
리뉴얼된, 체화된 강박. 사운드에서 보여질 수 있는
cf. 릴리 슈슈의 모든 것 : 영화는 질문만 던진다. 분위기상 들려지는 릴리 슈슈의 노래들, 그 노래들이 답을 제시해주는 것은
오픈스튜디오도
결과물은 항상 감성적으로 느껴지는 것에 대하여.
방법. 이것이 꼭 text로 정리되는 것이 아니라 모호한 상태에서 sound로 나타난다
아니지만 단서를 감상자가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부여하는 것은 사실.
어쩌면 답을 찾으려는 작업적 태도에서 아쉬움이 있다. 옛날 작업과 대조되는 지점들.
애매모호한 태도의 긍정적 효과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 : 작업이 될지 모르겠지만, 무엇인가를 만들고 수집했던 것들, 파편적인 이미지들을 가져오려고 했다.
작업이 되기에는 작고, 구조가 연약하였던 것들을 언제나 눈에 닿는 곳에 두고 있는 것 같았다.
작고 연약한 것들은 작업이 될 수 없는가? 이 질문이 내가 아카이빙 작업을 좋아하는 이유.
이들은 작은 것들 하나하나를 집중해준다. 나는 하나의 덩어리보다 얇고 길게 분산된 나열에 눈이 간다.
서사를 부여하기 이전의, 감각의 부스러기들. 웹에 이미지로 가져오고, 만지고, 하는 것...
웹에서 활용 가능성 : 아이코닉한 png 이미지
༜ : 굳이 조각에게 좌대가 나오지 않을 수 있다면, 규격화되어서 모여져 있을 때 보이는 느낌이 있을텐데,
한 프레임 안에 모여있을 때 감각이라던가.
아니면 이런 식으로 풀어진다고 생각한다면, 좌대위에 올려져야 한다는
방식 말고도 파편들이 하나의 이미지로서 또는 한 파일의 단위로서 어떤 장소에 펼쳐지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폴더와 파일은 항상 각자의 위치가 있다. 같은 이름이어도 서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위의 파일 분류체계처럼 시각적으로 웹상에서 조각 부스러기들의 현재 위치 및 경로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표를 보여줄 수도 있다.
좌대 위에 놓은 조각 하나하나에 하이퍼 링크를 달았을 때 평면임과 동시에 입체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을까?
조각을 어떻게 웹과 연결해서 보여줄 수 있을지,
조각과 웹이 연결된 네트워크 자체가 연약한 조각들을 단단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점.
추가적으로,
백그라운드 이미지에 투시도법이 적용된 이미지가 첨부되고, 특정 스크롤 상태에서 사운드가 시작될 수 있다.
웹 상에서의 비물리적 공간이 단순한 인터넷 환경이 아님을 인지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과거의 작업물들이 설 수 있는 위치가 될 수 있다면 재미있는 웹이 개설될지도.
중요한 점은 2D
이미지와 클릭이라는 키워드 아래에서 '아날로그적 감성'을 자극해주는 것이다.
삶의 궤도에 있어서 완성이라는 것은 없으나
스스로가 소화할 수 있도록 연결해놓은 매듭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은데,
우리는 엉성하게 짜여있는 실타레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상황이고,
그러한 시간들을 지나 스스로의 매듭을 엮어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지.
어떻게 하면 우리도 느슨하면서도 세밀하게 삶의 궤적을 잇고
언제까지고 그것을 이어가며 살아갈 수 있을까 생각하다보면
내년에는 내후년에는 더 나아지지 않을까.
그게 뭐든 간에 나아질 것이다.
그러게.
눈이 와.
눈이 계속 와.
아마 저녁 내내 온대.